본문 바로가기

언어학

그림의 법칙 - 영국인은 wh로 묻고, 프랑스인은 q로 묻는 이유

오랜만에 새 영상을 업로드했습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인도유럽조어가 영어와 독일어를 비롯한 게르만계 언어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음운 변동인 그림의 법칙과 베르너의 법칙에 대해 알아봅니다.

 

 

[대본]

유럽 언어를 공부해 보신 분들은

서로 다른 언어가 비슷한 단어를 공유하고 있는 경우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예를 들어 ‘언제’를 뜻하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quando, 

프랑스어에서 quand, 스페인어에서 cuando, 이탈리어에서 quando입니다. 

또다른 예시를 들자면, '심장’을 뜻하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cor, 

프랑스어에서 cœur, 스페인어에서 corazón입니다 이탈리아어에서 cuore입니다. 

모두 상당히 비슷합니다.

 

이와 같은 어휘의 유사성은 유럽의 거의 모든 언어가

인도유럽조어라는 공통 언어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원합니다. 

인도유럽조어는 먼 옛날에 존재했다고 생각되는 이론상의 언어로, 

18세기에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사이의 

공통점을 느낀 학자들에 의해 처음 제기되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언어끼리의 비교 분석 연구를 거친 결과, 

현대에는 인도유럽조어의 존재성이 거의 확실해졌을 뿐만 아니라 

인도유럽조어의 상당 부분을 복원하기까지 했습니다.

복원된 인도유럽조어에서 '언제'를 뜻하는 단어는 *kʷeh₂mdō, 

‘심장'을 뜻하는 단어는 *ḱḗr로, 좀전에 예시로 들었던 단어들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유럽 언어가 이런 뚜렷한 공통점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영어와 독일어를 비롯한 게르만계 언어들은 앞서 예시로 들었던 언어들과는 다소 큰 어휘 상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게르만계 언어와 인도유럽조어의 차이는 18세기에 인도유럽조어 가설을 연구하던 학자들에게 큰 골칫거리였죠. 

 

이 차이는 1822년에 야코프 그림이 '그림의 법칙’을 발표함으로써 명료하게 설명되었습니다.

야코프 그림은 그의 동생 빌헬름 그림과 함께 그림 동화를 집필한 독일의 동화 작가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야코프 그림은 동화 작가 뿐만 아니라 언어학자로도 왕성히 활동했습니다.

특히 그가 제시한 그림의 법칙은 언어학의 발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 법칙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림의 법칙은 역사상 최초로 발견된 발음 변이 규칙이었습니다.

발음 변이를 논리적이고 규칙적인 공식으로 설명한 그림의 법칙은,

이후 대모음추이나 후두음 이론 등의 발음 변이 규칙이 태동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림의 법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도유럽조어의 음소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당시에는 산스크리트어, 고대 그리스어, 그리고 라틴어의 비교 분석을 통해 인도유럽조어가 15개의 파열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15개의 파열음은 아래와 같은 표로 정리할 수 있으며, 각각 (...)입니다. 여기서 이 두 줄하고, 이 두 줄의 차이가 잘 구별이 안 되셨을 텐데, 이 줄은 이 줄보다 조금 더 기식성이 강하며, 이 두 줄의 발음 차이는 아직 학계에서 논쟁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냥 똑같이 발음했습니다. 15개의 파열음은 다양한 언어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서로 합쳐지거나, 다른 발음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라틴어에서는 이 두 줄이 동일한 발음으로 합쳐졌고, 이 줄은 위의 줄과 합쳐지거나 f, v 등의 마찰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야코프 그림은 게르만계 언어의 단어와, 라틴어를 비롯한 다른 인도유럽조어 계통 언어의 어휘를 면밀하게 비교해 본 결과, 게르만계 어휘와 인도유럽조어계 어휘 사이에 매우 규칙적으로 대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인도유럽조어의 bʰ, dʰ, gʰ, gʷʰ는 게르만계 언어에서 b, d, g, gʷ로 바뀌었고, 인도유럽조어의 b, d, g, gʷ는 게르만계 언어에서 p, t, k, kʷ로 바뀌었고, 인도유럽조어의 p, t, k, kʷ는 게르만계 언어에서 f, θ, x, xʷ로 바뀌었습니다. 즉 세번째 줄은 두번째 줄이 되고, 두번째 줄은 첫번째 줄이 되고, 첫번째 줄은 새로운 발음으로 바뀐 것이죠. 이후 영어에서는 x와 xʷ가 h와 wh로 바뀌게 됩니다.

그림의 법칙은 영상의 도입부에서 살펴본 인도유럽조어와 게르만계 언어의 차이를 잘 설명합니다. 인도유럽조어 *kʷeh₂mdō에서 kʷ 음소는 그림의 법칙에 의해 xʷ로 바뀐 후, wʰ가 되었습니다. 인도유럽조어 *ḱḗr의 ḱ 음소는 라틴어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k가 되었고, k는 그림의 법칙에 의해 x로 바뀐 후 h가 되었습니다. 그림의 법칙의 예시는 이외에도 수많이 있습니다. 라틴어에서 ‘아버지’를 뜻하는 'pater’는 p → f 변이를 거쳐 'father'이 되었고, 라틴어에서 ‘셋'을 뜻하는 'trēs'는 t → θ 변이를 거쳐 'three'가 되었습니다. 라틴어에서 '형제'를 뜻하는 ‘frater’은 조금 복잡합니다. 먼저 인도유럽조어의 파열음과 라틴어의 파열음 대응으로부터 'frater'의 f는 원래 인도유럽조어 'bh’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의 법칙에 의해 'bʰ’가 ‘b’로 바뀌어, 영어의 ‘brother’이 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인도유럽조어에서 발을 뜻하는 *pṓds의 p가 f로 바뀌어 영어의 foot이 되었고, 인도유럽조어 *h₂ébōl의 b가 p로 바뀌어 apple 된 등의 예시가 있습니다.

이처럼 그림의 법칙은 인도유럽조어와 게르만계 언어의 연관 관계를 매우 명확하게 설명했지만, 몇 가지 한계점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의 법칙에 의하면 라틴어 ‘pater'은 p → f, t → θ 변이를 거쳐 ‘faθer’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faðer'이 되었습니다. 즉, 무성음 θ로 바뀌었어야할 음소가 유성음 ð로 바뀐 것이죠. 당시에는 이를 그냥 예외로 치부했지만, 점점 이와 비슷한 예외가 많이 생겨나면서 이들을 모두 예외로 치부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라틴어 ‘septem'의 p는 f로 바뀌어 ’sefen’이 되어야 하지만, 'seven'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f로 바뀌었어야할 음소가 유성음 v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1877년 언어학자 베르너에 의해 이 예외들도 모두 규칙적인 발음 변이였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베르너는 두가지 조건이 성립할 때, 그림의 법칙에서 f, θ, x, xʷ는 유성음 v, ð, ɣ, ɣʷ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첫번째 조건은 대상이 되는 음소가 단어의 맨 첫번째 음소가 아닐 것, 그리고 두번째 조건은 대상이 되는 음소 직전의 모음에 강세가 없을 것, 입니다. 좀전에 등장한 인도유럽조어 *patḗr을 다시 보시면, 강세가 t 앞에 없고 단어의 맨 뒤에 있습니다. 또한 t는 단어의 맨 첫번째 글자가 아니므로, 베르너의 법칙이 적용되어 t가 θ 대신 ð로 바뀝니다. 따라서 faθer가 아닌 faðer가 됩니다. 또한 라틴어 'septem'의 기원이 되는 인도유럽조어 *septḿ̥에서도 강세가 p 앞이 아닌, 단어의 맨 뒤에 있기 때문에 p는 f 대신 v로 바뀝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유럽조어에서 형제를 뜻하는 *bʰréh₂tēr는 그림의 법칙에 의해 bʰ가 b로 바뀌고 t가 θ로 바뀌어 broθer가 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θ가 ð로 바뀌는 베르너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bʰréh₂tēr의 강세는 t의 바로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broθer가 되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로도 고대 영어에서는 brother을 broθer와 같이 발음했습니다. father th는 ð가 되고, brother의 th는 θ가 된 이유는, 다름 아니라 강세의 위치 때문이었던 것이죠. 이와 같이 그림의 법칙과 베르너의 법칙은 상당수의 게르만계 언어의 자음과 인도유럽조어의 자음 차이를 명료하게 설명하여 인도유럽조어가 탄탄한 가설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제가 처음 스페인어를 공부했을 때, 저는 왜 영어의 의문사는 모두 wh로 시작하고, 스페인어의 의문사는 모두 q로 시작하는지 궁금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영어와 스페인어의 wh - q 대응이 사실 그림의 법칙의 핵심 단서였다는 사실은, 나중에 저를 매우 놀라게 했습니다.  방대한 언어의 데이터로부터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숨겨진 규칙을 찾아내는 것도 물론 재미있지만, 이렇게 찾아낸 규칙을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언어학만이 가지는 특별한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 질문이 남았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그림의 법칙과 베르너의 법칙과 같은 규칙적인 발음 변이가 언어에서 나타나는 것일까요? 이것에 대한 이야기 또한 언어학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또 여러분과 한 번 이야기해 보고 싶은 주제이기 때문에, 나중에 별개의 영상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가 될 때 다시 한 번 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구독 버튼을 눌러 주시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디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